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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가끔은...다르게 살고 싶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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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벽한시
2015. 3. 15. 21:5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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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물이 될때까지 <밤길 中  일부 > -신경숙-




 "나를 성당까지 데려다주지 않겠어?"
 명실의 발자국을 따라 그 곁으로 간다. 명실이 내 손을 쥔다. 손이 차다.
 "......나를 찾고 있을 거야. 목욕을 몰래 나왔거든. 이유는 없어.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..... 네가 날 데려다주지 않으면 나는 이 시의 끝까지 걸어갈 것 같아."
 "......"
 "그렇다고 내가 불행하다는 얘긴 아니야..... 나름대로 만족해. 내가 맡은 교리반 사람들이 베로니카, 아녜스, 마리아...... 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을 때는 빛도 보지...... 그런데도 가끔 내 가슴은 뛰고...... 이렇게 말고 다르게...... 살고 싶어져...... 쉿, 비밀이야. 넌 나의 고해성사를 받고 있는 거야...... 그럴 때면 목욕을 가. 오늘처럼 몰래 말야."
 "......"
 "오늘처럼 즐거운 목욕은 아니야...... 샤워기 아래서 실컷 울거든."
 "......?"
 "......웃지 마......정말 웃지 마......목욕탕엔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아.....그래서 마음껏 울 수 있어."
 나보고 웃지 말라고는 명실 자신이 웃는다. 입은 웃는데 눈은 운다. 저 골목만 돌면 성당이다. 골목을 돌기 전에 명실과 나는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를 동시에 쳐다본다. 열리지 않은 교문 쇠창살 사이로 눈밭이 보인다. 하얀 동상과 신관과 고목이 눈 속에 우뚝 서있다. 저 고목엔 아직도 그 팻말이 매달려 있을까?- 이 나무가 말을 한다면 백 년 전의 이야기를 말해줄 것이다- 성당의 첨탑도 하얗다. 한 수녀가 눈을 쓸고 있다. 명실이 나의 손을 놓는다. 명실이 다가가 눈을 쓸고 있는 수녀를 향해 등을 구부린다. 그러고 한참 있다. 성당 앞 눈길에 나는 멀뚱하게 혼자 남아 있다. 돌아다보니 골목길에 발자국 네 개가 사이 넓은 클로버잎처럼 찍혀 있다. 시계를 봤다.상행선 출발 시각 이십 분 전이다. 명실이 구부렸던 등을 펴고 뒤돌아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. 잠시 머뭇대다가 명실이 철문 안으로 사라진다. 
 이숙이가 우리에게 들키지 않고 내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숨겨진 길을 걸어가버렸듯, 명실도 내겐 낯선 문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. 괜히 급한 마음이 되어 택시를 잡아타고 역으로 돌아와 기차표를 끊고 개표를 하고 좌석을 찾아 앉는다.
 
 이숙과 나 사이에 생긴 일은 서로 전화할 수 없다는 일이다. 이숙과 나와 Y와 H와 K 사이에 생긴 일은..... 
 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일이다. 그뿐이다. 

상행선 열차가 역사를 빠져나간다. 플랫폼 기둥, 외등에서 쏟아져나온 불빛들이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. 버둥거린다. 떠돌던 몸을 부착시키고 있는 흰나방이처럼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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